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나디르 샤 (문단 편집) == 개요 == 본명은 나디르 콜리, [[사파비 왕조]]의 건국에 공헌한 [[호라산 튀르크]]계 아프샤르족[* Afshar people. [[호라산]]에 정주하며 [[이스마일 1세]] 재위 때부터 [[사파비 왕조]]에 군사력을 제공하던 반유목 부족.] 출신으로 고향은 이란의 동북부인 [[호라산]] 지방의 다르가즈[* درگز/Dargaz]였다. [[사파비 왕조]]의 무장이었던 나디르 샤는 1722 ~ 1729년의 7년여간 [[이란]]을 지배한 아프간 족의 [[호타키 왕조]]를 쫓아내고 사파비 왕조를 부활시켰지만, 오스만 제국에게 승리를 거둔 후에는 이내 이름뿐인 사파비 왕조를 스스로 멸망시킨 뒤 1736년에 제위에 올라 [[아프샤르 왕조]]를 세웠다. 그 후로 대정복을 시작해 [[인도양]]에서 잘나가던 [[오만 제국]]을 갈아버림으로써 수도를 [[탄자니아]] 인근의 [[잔지바르]]로 옮기게 했고, [[아프가니스탄]]을 정복하여 호타키 왕조를 멸망시켰다. 곧바로 1739년, [[무굴 제국]]의 대군을 카르날 전투에서 무찌르고 [[델리]]를 점령한 후, 코이누르 등 무굴 황실의 보물을 약탈하고 돌아왔다. 1740년에는 [[부하라 칸국]]과 [[히바 칸국]]을 무력으로 정복하여 중앙아시아까지도 평정했다. 가히 전쟁 기계이자 페르시아 최후의 불꽃이라고 해도 다름 없는 인물인 셈. 이러한 업적으로 이란에서는 페르시아의 [[나폴레옹]]에 비견하며 최고의 전쟁 영웅이자 [[명장]]으로 기리고 있다. 그러나 내치에는 실패하여 폭정을 일삼았기에 잦은 반란에 시달려야 했다. 결국 1747년, [[쿠르드족]]의 반란을 진압하던 와중에 일어난 진중의 반란으로 암살당하면서 파란만장했던 삶을 마감한다. 전투에선 천제 혹은 투신이라 칭송받고 내치에서 파탄인 행적으로 이란의 [[항우]]라고 하는게 더 어울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.[* 중국의 역사학자들은 나디르 샤를 [[초한쟁패]]에서 이기고나서의 항우라고 평할정도며 이란의 중국사 전문가들도 항우를 중국의 나디르 샤라고 평하기도 한다. 감정적이고 완고한 성격이라 학살하는 것도 비슷하다 그나마 나디르 샤가 항복하면 살려준다라서 항복하든 말든 닥치는대로 학살하는 항우보단 낫지만 나디르 샤 역시 항복을 받아준 델리를 완전 초토화시킨 적 있으니 항우와 별판 차이가 없었다고 봐도 무방하다. 완고하고 즉흥적이고 감정적인 면도 비슷하다.]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